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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인권리포트

사회심리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파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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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2013년 11월 08일 (금) 10:48:09 글 티나 민코위치(Tina Minkowitz) 번역 이동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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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나 민코위츠는 WNUSP(World Network of Users and Survivors of Psychiatry, 세계정신보건서비스 이용자 및 피해자 네트워크) 국제대표이자 뉴욕주 인권변호사로, 정신장애인의 인권 확보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사회심리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

(people with psychosocial disabilities,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장애인으로 명칭하고 있음)이 겪고 있는 인권침해에 대해 논의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논의를 명확케 하기 위해, 나는 미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먼저 밝힌다. 일부국가에서는 정신의학이 별로 없는 등 국가 간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공통점이 있다.

올해 정신의학 이용자 및 생존자 세계 연대(the World Network of Users and Survivors of Psychiatry)’의 전략기획회의에서도 이 점은 충분히 발견되었다.(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http://wgwnusp2013.wordpress.com/about/)에 있는 보고서를 보면 된다.) 

 

 

나는 1977년 뉴욕의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자유를 박탈당했다. 약을 거부할 수 있는 어떤 권리도 인정되지 않았다.

모든 입원환자들은 정기적으로 소라진(클로르프로마진 성분의 의약품)과 할돌(할로페리돌 성분의 의약품) 같은 신경이완제를 복용해야 했다.

한 여성은 약물 복용을 거절했다가 구속복을 강제로 입게 되었고, 주사를 맞았다. 시설은 우리에게 커피와 녹차를 섞은 음료를 주었는데,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우리의 존엄성을 무시하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1986년 뉴욕주 대법원은 정신병원의 비자의적 입원자들이 치료에 대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한, 약물을 거부할 권리가 있음을 판결했다. 우리 모두는 아주 훌륭한 판결이라고 생각했고, 당연히 우리의 결정이 존중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틀렸다.

1997년에 나는 법원의 모니터링 프로젝트를 수행했는데, 특정 법원에서 6개월 동안 행해진 강제치료에 대한 청문을 관찰했다. 이듬해 나는 강제약물투여에 초점을 맞추어 뉴욕의 정신병원 입원자들이 약물을 거부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거의 모든 경우에 판사들은 강제치료에 대해 찬성하는 판결을 하고 있었다. 주의집중 저하, 입 건조와 같은 부작용을 호소해도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약물중독으로부터 회복과정에 있기 때문에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약물을 거부한다고 해도,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통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도, 그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입원환자가 의사이거나 간호사여서 약물을 거부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다 해도 무시되었다. 약물은 독이거나 청산가리 같은 것이라는 견해를 표현하거나 의사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무시한다는 말을 하면, 편집증이라는 병명이 따라붙게 되고 강제투약이 정당화되었다.

그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고 전적인 통제를 하려하기 때문에, 우리가 말하는 것은 정반대로 여겨지는 정말 악몽 같은 세상이었다. 항상 한 방향으로만 흐르면서, 한 인간을 정신병 환자로 만드는 하나의 기계 또는 조립라인 같았다.

일부 변화는 있었다. 내가 구금되었을 때, 화학적 불균형’(뇌의 화학물질의 균형이 깨져 정신병이 발생한다고 보는 입장)에 대한 믿음이 시작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것을 믿었으나 대부분의 경우 정신병은 신체적 실재보다는 은유적 구성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정반대가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입원하기보다는, 일차의료기관 의사 또는 외래 정신과의사로부터 정신과 약을 처방받고 있고, 의약품은 정서적 고통에 만병통치약처럼 팔리고 있다.

화학적 불균형에 대한 믿음은 평생 신경이완제나 다른 의약품을 복용해야만 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그럼에도 뇌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것과 같은 중대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설명을 듣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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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인천세계장애대회(APDF)에 참석한 티나 민코위츠

 

내가 입원했을 때 정신건강 시스템, 주간 센터, 보호 작업장, 클럽하우스의 후원 하에 지역사회 공공 정신건강 기반시설인 성인 가정’, ‘지역사회 주택’, ‘지원 거주와 같은 거주유형이 제공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시설과 유사한 장기적인 시설이용을 되풀이하고 있었고, 일반병원에 있는 감금시설을 복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1977년에는 공공부조나 장애수당에 의해 경제적으로 살아남는 것이 가능했었다. 당시에는 독방 주택도 있었고, 저렴한 아파트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택을 얻고 다른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정신건강 시스템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신건강 시스템과 관계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반복적으로 구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영구적인 관찰과 통제 하에 사람을 두고자 하는 사례관리 개입, 독단적인 지역사회 치료, 외래환자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에 정서적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 지속적이고 비생산적인, 징벌적인 접근법이다. 정신건강문제로부터 회복한 사람들은 정신건강 서비스 시스템이 있음에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소비자/생존자 운동(consumer/survivor movements)1977년부터 많은 발전을 해왔다.

나는 이 운동에 1978년 참여하게 되었다. 참여했던 집단의 성과물로는, 사람들이 시설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사는 일시적인 거주를 제공한 것, 정신병 약물의 작용에 대한 팜플렛을 만든 것 등이 포함되었다. 그 당시 재정지원은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만나거나 공공장소에서 만나기도 하였다. 우리는 스스로를 () 정신환자(ex-mental patients)’로 불렀으나, 나중에는 조금 더 정치적인 용어인 () 정신의학 입원환자(ex-psychiatric inmates)’로 불렀다.

북미의 다른 도시에도 비슷한 집단이 있었으며, 우리는 매년 정신의학의 억압 반대 및 인권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하였다. 일부 운동세력이 소비자로서 정신건강 시스템과 협력할 수 있게 연방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도록 협상했다는 폭로가 제기됨에 따라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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